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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봐요] 일상에 여유를 주는 짧은 현대국악 공연 /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 후기

흿세 2021. 6. 5. 22:55

6월 2일의 일기입니다 :)

 

[2021 젊은 국악 도시樂]

아침부터 너무나 바빴다. 해야할 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들을 하고나니 사진관 현상소 사장님께 말씀드린 시간까지 도착하기에는 무리였다.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불쾌함을 가져온다. 사장님은 현상소에 계실거고 내가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 와중에 다행이었다. 누군가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기엔 한 여름에 버금가는 아주 더운 날씨였기 때문이다.

현상소에서 이미 인화된 사진을 찾아오는 일은 아주 금방 끝났다. 오래 기다렸다고 농담을 하시는 현상소 사장님께 멋쩍은 웃음만 보이고 현상소를 나섰다. 이마에 맺힌 땀이 채 식기도 전에 나는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은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에 가는 날이었다.

남산 한옥마을에 갔던게 언제더라... 사실 내부가 어땠는지도 기억이 안났다.
그러니 친구가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에도 '거기에 국악당이 있었구나'하고 신기해 했었다. 그럼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사는 곳 주변의 시립 아트홀 같은 생김새를 떠올렸다. 무려 서울시에 있는 공연장이니 적어도 규모면에서는 보통의 시립 아트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직접 가서 본 국악당의 모습은 생각보다 소담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야외 공연장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생각하지도 못한 점이어서 놀랐다. 공연 입장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국악당 앞 벤치에 앉아 정면으로 국악당을 바라보니 주변의 풍광과 정말 잘 어울렸다. 그 자리에 보편적인 아트홀이 지어졌다면 흉물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높은 지대에 세워진 국악당의 옆으로 푸른 나무가 길을 따라 빼곡히 자리해 있고 시선을 위로 돌리면 보이는 남산타워까지 혼자 비대하여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는 것 하나 없이 그야말로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그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벤치에 앉아서 나는 인화한 사진들을 한 장씩 둘러보았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그늘로 불어오는 바람이 곧 달래주는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국악당 입구 바로 앞에 자리한 나무그늘과 벤치. 뒤로는 작은 냇가도 있어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국악당 주변이 분주해졌다. 입장시간이 다가와 나도 재빨리 줄을 섰다. 친구로부터 이른 시간에 입장하여 그늘자리에 앉으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그래, 오늘 공연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날이니 조금은 여유롭게 공연을 봐야겠다 싶어 무대가 되는 자리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 국악당 건물 처마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장 한 켠에 자리한 공연 안내 스크린. 한옥의 구조를 살린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의 모습. 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독특한 모양의 타프를 설치해 두었다. 하지만 난 더워서 처마아래로 피신.


내가 관람하는 [2021 젊은 국악 도시樂]은 서울시와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이 함께 국악의 활성화를 위해 기획한 공연이다. 5월 12일부터 6월 2일까지 각기 다른 팀의 공연이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12시에 진행되는 공연이다. 사실은 내가 공연을 본 날이 마지막 공연날이었다. 하지만 이번으로 4회를 맞이하는 공연이니만큼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획되고 공연이 오를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그러니 전통적인 국악이나 현대국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둘러볼만한 공연이다.

 

오늘 공연을 하는 팀은 [모던가곡]이라는 팀이었다. 김유나, 이나연, 지민아라는 이름을 가진 3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아쟁, 생황, 피리와 각종 타악기로 연주를 하고 양반들의 노래라던 정가를 하시는 분께서 노래를 하는 팀이다. 스스로 파악하기로는 기존의 전통적인 악곡을 가져와 현대적인 주제를 담아 새롭게 창작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배경지식이 없이 관람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생황이라는 악기의 소리였다. 특색있는 생김새 만큼이나 특색있는 소리를 내며 공연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나는 우리나라 악기로서 관악기를 생각하면 단연 태평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태평소는 누구나 알다시피 경쾌하기로서는 제일 가는 악기이다. 다음으로는 수년전 관람했던 국악공연에서 들은 대금 소리가 떠오르는데 그 부드러우면서도 정중한 소리는 관객을 숨죽이게하고 그 적막을 긴 시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생황의 소리는 소리자체는 태평소처럼 경쾌한 맛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움이 섞여 있다. 한 시간 가량의 공연 동안 꽤 많은 곡에 생황의 소리가 쓰였는데 질린다거나 힘이 과하다거나 지루하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고 익숙한 종류의 소리는 아니었어도 그래서 낯설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아쟁이라는 악기가 눈에 띄었다. 어째서인지 높은 음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있는 아쟁은 사실 국악기에 속하는 현악기 중에서는 가장 낮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어째서인지 아쟁을 해금과 혼동했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는 아쟁소리를 내는 악기는 해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작 몇달 전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쟁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실제 아쟁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 보다 더 크고, 크고!! 컸다. 정확히는 널찍했다. 연주자 분은 활로 아쟁을 켰는데 그 모습도 뭔가 신기했다.

 

마지막으로는 노래를 부르시던 '지민아'씨가 연주하던 가락악기였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전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앞에 앉은 두, 세명의 몸집으로 다 가려질 정도니 그렇게 커다란 악기는 아니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니다. 악기의 소리는 피아노의 전신이라 여겨지는 하프시코드와 매우 유사해서 국악기에도 저런 것이 있었나! 하고 신기해 했는데 설명을 하시는 걸 듣고보니 국악기는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철로된 현을 사용하여 피아노의 뿌리가 되는 방식'을 쓴 악기라고 설명하셨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넘겨짚은 것이지만 국악기를 두고 그런 설명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던가곡]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나른했다. 지민아씨가 부른다는 정가가 어떤 스타일의 노래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양반의 노래라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노래가 여러 음률을 드나들어도 거친 부분이 없었고 악기의 소리도 서로 잘 어우러져 저절로 눈이 감겼다. 공연 중간에 [모던가곡]팀은 국악이 가지고 있는 '쉼'을 노래에 실어 전달하고자 한다고 했는데 나는 공연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그 말에 공감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공연장, 처마 그늘 아래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태평한 마음, 카페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 한 잔의 술로 털어버리는 유쾌함을 듣고 있자니 불과 몇 미터 앞이 분주하게 흘러가는 도심인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하도 눈을 감고 공연을 보기보단 듣다시피하니 공연의 말미엔 눈가가 뻐근했다. 나는 그 어떤 관객보다 늦게 국악당을 나섰다. 국악당에서 일한다는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국악당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해서 그러했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게 국악당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다보니 어느새 공연장에 펼쳐져있던 의자들은 사라져 있었고 내가 국악당을 나설 때 즈음에는 한옥마을을 산책하던 견주와 그의 강아지가 함께 국악당 마당을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내가 일하는 공연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공연장 내부의 청결 관리를 위해 관객입장을 제한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관객들의 퇴장을 유도해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그 일을 하면서도 조금은 야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공연이라면 모름지기 그 여운이 남기 마련이고 그를 깊이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연장에서 발이 잘 안 떨어지며 여운을 느끼고자하는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공연장 밖으로 나가달라는 말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기도 하다.

 

반면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이라는 산 속에 위치한 국악당은 어떠한가. 그 주변이 이미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니만큼 국악당의 대문을 넘어서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오늘 내가 본 공연은 무료이니 시간만 맞추어 온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실제로 나처럼 일부로 그 시간에 그 장소를 찾은 관객들도 있었지만 공연 중간에 들르듯이 입장한 관객들도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한옥마을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국악당 담벼락을 넘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공연장에서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들을 정기적으로 열곤한다. 내가 일한다는 공연장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약 한시간 동안 진행되는 마음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한옥마을 국악당처럼 '지나가다 공연장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들어왔어요' 하는 경험은 이루어지기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알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는 일상의 작은 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남산골 한옥마을의 홈페이지 주소를 남긴다. 비록 내가 본 공연은 이미 끝이 났지만 국악당에 오르는 다양한 공연들이 있고 한옥마을 내부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전통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사실 장소 자체만으로도 휴식을 주기에 좋은 곳이니 식사를 하고 산책하다가 공연 시간에 맞춰 국악당을 방문하는 것이나 식사 후에 커피 한잔을 들고 공연을 관람하러 국악당에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한옥마을을 그저 몇채의 전통가옥이 있는, 관광객의 필수코스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국악당에 들러 공연을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짐작하건데 한옥마을은 우리의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우리에게 가장 활짝 열린 공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hanokmaeu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