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맨들맨들은 어느새 꽤 길쭉한 하반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어딘가 길쭉해진 맨들이들을 지켜보면서도 얘네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둔치라도 이들의 성장을 알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바로 바로 새로운 줄기가 났기 때문이다.
연쇄

나는 맨들이들이 심어진 줄기쪽을 한참 관찰하다가 생각보다 많은 애들이 이 좁은 화분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드디어 생각만 했던 분갈이를 실천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가는 길에 동네 꽃집을 들렀다.
이 꽃집은 이름으로는 꽃집이지만 항상 많은 수의 화분을 내어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화분에 놓고 기르는 식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부에는 밖에서 볼 때보다 더 많은 화분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 곳에서 꽤 큰 크기의 토분을 구매했다. 분갈이를 할 것이라 흙도 구매하려 했으나 사장님께서는 사정이 있으셔 오랜만에 가게를 여신 탓에 판매용 흙과 마사토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되려 미안해하시더니 본인이 쓰는 용도인 듯한 흙과 마사토를 나에게 조금 주셨다. 친절하셔..

새 흙과 새 화분, 흙을 따로 덜어놓을 대야 하나와 모종삽..을 대신할 모종손.. 모종수? 를 준비한다.
모종수는ㅋㅋㅋㅋ 손톱을 자르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꽃집 사장님께서 화분 물이 빠지는 곳에 미리 망조각을 잘라 올려주셨다.

우선 화분에서 흙을 모두 덜어내고 배수구멍 위에 망을 올린 상태로 마사토를 한층 깔아주었다. (사진이 없는 것은 그저 허겁지겁 일을 처리했기 때문..)
그리고 우선은 낮게 흙을 깔아주었다.

그 위로 원래 있던 화분에서 맨드라미들을 꺼내었다. 좁은 곳에 뿌리를 박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터라 아주 잔뿌리들이 서로 엉키어 한 덩이를 이루었다. 촉감은 아주 말랑말랑해서 솔직히 이런 힐링이 따로 없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흙을 깔은 곳 위에 저 흙덩이 그대로 넣고 주변을 새흙으로 다시 덮어서 분갈이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고나니 화분이 넓음에도 다들 가운데에 뭉쳐있는 꼴이라 조금 퍼트려서 심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맨드라미들을 두 덩이로, 그 다음에는 네 덩이로 나누었다. 한 덩이당 3개 줄기정도가 있게끔 나누었다. 솔직히 이 과정을 하면서 생각보다 이들의 잔뿌리가 서로 엄청 얽혀있다는 걸 깨달아서 괜히 이러는 건가 싶고.. 정말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솔직히 아직도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여튼 최선을 다해서 주변의 흙을 털어내고 최대한 뿌리들을 살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 흙이 모자라다 ㅜㅜㅜ 흙이 모자라 엉엉 흙이 모자라아아아아아아 분명히 더 넓고 좋은 곳에서 햇빛 팍팍 받으며 잘 자라라고 한 건데 화분 높이도 못 넘게 생겼으니.. 하.. 정말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분갈이를 할 때 흙을 다 털어서 뿌리가 나오도록 한 뒤 다시 심으려하니 맨드라미 자리 잡게하는 것도 힘들고 흙이 모자라다보니 화분 깊은 곳에서 작업을 해야해서 섬세하게 하기 힘들었다. 쪼그려 앉은 다리는 아프고 맘대로 분갈이는 안되고 분갈이 하면서 '내 새끼들 좋은 집에서 한 번 살게 해주려다가 죽여버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참사가 발생했다.
마사토를 깔고 물을 흠뻑 준 뒤 햇빛이 드는 곳으로 옮기려했건만.. 꽃이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일단은 이 정도여도 뭐.. 선방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베란다 쪽으로 옮겨두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어무니로부터 집에 여분의 흙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제 2차 분갈이 전쟁에 참전했다.

뭐 별거 있겠나. 나는 심었던 맨드라미들의 뿌리부분까지의 흙을 다시 싹 들어냈다가 어머니로부터 얻은 흙을 더 얹고 들어낸 부분을 다시 올렸다. 역시 쉽지는 않았고.. 자줏빛을 영롱하게 뽐내던 이쁘고 풍성하던 꽃이 그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렇다 나는 연쇄살화마. 이 손은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살화의 기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따뜻한 보통 사람인지라 슬퍼하고 애도하며 그리고 비록 꽃은 사망하였으나 그 잎은 살아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희망을 싹틔웠다. 새로 흙을 얹었으니 물을 다시 흠뻑 주었다. 그 안에 나의 눈물도 한 방울, 두 방울 섞여있으리라.. 흑흑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보니 뭔가 요상한 알알이 화분에 올라가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화분에 올라간 요상한 알들이 가득 담긴 통을 보니 영양제였다. 어머니가 몰래 뿌려놓으신 것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이 손의 광기를 한 발짝 뒤에서 목격하시고 우리 맨드라미 아이들의 생존을 먼발치에서나마 응원하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어머니가 차마 챙기지 못한 작은 화분에도 영양제를 뿌렸다.
그리고 하루 뒤, 오늘. 물을 주었다. 그 사이 이파리가 많이 말랐고 아이들 중 누군가는 적응을 했지만 누군가는 아주 명확하게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바로 주황색 아이였다. 진짜 너무너무 속상했다. 제일 키가 크고 튼튼하던 아이였는데. 유독 주황색 꽃이 달린 가지만 잎이 마르고 꽃도 마르고.. 꽃이 탄탄하게 촛불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꽃 대가리가 떨어진 이전의 사례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는 비록 부주의로 인해 꽃이 떨어졌으나 줄기는 꼿꼿했고 이파리도 여전히 잘 붙어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야말로 시들어 있었다. 죽으려나.. 정말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 관리를 해야할 것 같다.

작은 집으로 옮겨진 아이들은 생각보다 괜찮다. 노란 꽃이 달린 아이가 조금 위태로운 것도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리고 새로 나왔던 작은 꽃도 잘 자라고 있다. 그래도 몇 주 더 보았던 화분이라고 왜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건지. 더 싸구려인데.. 괜히 심적으로 편해..
그리고 물을 주는 주기는 조금 더 짧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꽃을 데려온 곳에서 설명한대로 물을 주었던 우리 어머니의 식물이 수분이 부족해서 말라가고 있었는데 사실 그 아이는 이렇게 해가 뜨거운 날씨에는 하루에 두 번 물을 주어도 괜찮을 정도로 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거의 요단강 건너 흙으로 돌아갈 지경이던 아이를 지금와서야 물을 상시 주도록해서 조금이나마 소생을 시켜놓았다. 그러니까.. 처음 나의 맨들맨들을 데려올 때 3일에 한 번 물을 주라는 것은 솔직히 믿을 만한 정보는 아니겠구나 싶다는 것이다. 맨들맨들의 잎이 마르는 게 보임에도 3일에 한 번을 칼 같이 지켰건만 배신감이 든다. 다시 한 번 이번에 방문한 꽃집 사장님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본의 아니게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되는 흿세의 촛불맨드라미 기르기.. 우선은 비교적 큰 화분을 사서 분갈이까지 마쳤다. 과연 잘 한 일인지는 앞으로 일주일, 이주일을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생각보다 더 치열하고 피튀기는? 아니 물튀기는 식물기르기.. 과연 맨드라미들은 가을까지 꽃을 피워 겨울에 파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기대하지 마시라!

오늘 맞이한 내 새끼들과 함께하는 소나기 감상타임. 비를 맞아 올라오는 풀내음과 흔들리는 이파리 소리, 빗소리.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맥주 한 잔 ^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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